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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경심 드라마를 시청하며

미드에 일드를 거쳐 영드까지 챙겨볼 만큼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나에게도 영 내키지 않는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중국 드라마다. 중국 드라마는 물론이고 실은 중국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 영상물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무협, 무협하면 그 특유의 과장된 비장미가 바로 떠오르고, 거기서 한 발작만 더 나가면 억지로 가슴을 쥐어짜는 신파정서로 곧장 이어지게 되어 있다는 생각(어쩌면 편견) 때문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최근 들려오는 중국 드라마의 괄목할 만한 성장 소식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감각을 갖춘 영화감독들이 만드는 중국 영화라면 또 모를까, 내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드라마는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좀처럼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월=연우(?)의 정체성 확인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해품달>의 더딘 전개 때문에 화딱지가 나서 본격 정치+멜로+사극을 뒤져보다 보니, 나의 그물에 <보보경심>이라는 중드가 걸려 들었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설정임에도 역사적 사실을 많이 훼손하지 않으며, 300년 전으로 거슬러 간 여주인공과 황자들간의 로맨스가 극의 주된 내용이지만, 황자들을 둘러싼 왕권다툼 이야기도 흥미롭다는 평을 들은 터라, 중국 드라마임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해품달>로 인해 생긴 답답증을 풀어줄 뭔가가 <보보경심>에 있을 듯했다. 머릿발에 기대기는커녕 그 어떤 미남자도 다 똑같이(대머리) 만들어 버리는 변발의 높은 장벽를 극복하고, 초반 몇 차례의 유치한 에피소드만 잘 견디고 나면 휘몰아치듯 보게 될 거라는 누군가의 추천을 무작정 믿고, 건성건성 보더라도 일단 15회까지만 넘겨보자 다짐하고 보기 시작했다.

 

변발에 적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저 둥그런 뒤통수를 가진 황자들이 부러웠을 뿐. 그보다는 더빙이 더 문제였다. 묘하게 입 모양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목소리가 처음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여전히 좀 촌스러운 듯한 편집과 촬영,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CG, 잦은 독백적 대사도 솔직히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까지는 아니어도 낯간지럽게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의 말대로 한 회, 한 회 지나갈수록 자연스레 적응 되더라(이건 대충대충 봐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주인공 마이태 약희에게 주어진 상황과 그에 따른 선택과 행동이 점차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역사 상 승자와 패자를 알고 있음에도,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어 놓거나, 아니 그 정도의 큰 변화가 아니라, 다만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려는 아주 소극적인 저항조차도 약희는 조심스럽다. 끝을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련한 여주인공은 그래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이방인의 삶을 살아간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조심하며 걷는 마음을 뜻하는 드라마의 제목은 낯선 시간 속에 던져진 여주인공의 속내를 그대로 대변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금세 쓰러질 듯 쇠약해지는 약희의 근원적 병명은 아무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지 못해 쌓인 화병이 아닐까 싶다(물론 7년 동안 빨래하느라 생긴 육체적 피로도 한 몫 했으리라).

 

약희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운신의 폭이 제한적인 여인의 몸이라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짐작 되기는 한다. 하지만 알고 있는 역사와 현대 사회에서 익힌 지식과 경험을 통해 뭔가 반전을 꾀할 수도 있을 법 한데, 약희는 내내 속으로만 끙끙댄다. 특히 8황자에게 4황자를 경계하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정도로 8황자의 운명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점은 너무나 안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왕자들의 난을 막기 위해선 의심병 황제 강희제를 움직이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었을 텐데, 머리가 좋기는 하지만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적 감각을 갖추지 못한 약희는 끝까지 관찰자에 머물고 만다. 약희의 어쩌면 순진한(경계하라는 조언이 바로 8황자가 황위에 대해 좀 더 조심스레 다가가게 만들 거라는 판단) 참견이 나비효과처럼 훗날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되고, 그 원인이 자신의 아주 순진한 생각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고 절망한다는, <보보경심> 유일의 반전(?)은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타임슬립의 설정을 생각하면 조금 단조롭다 싶다.

 

태자와, 4황자, 그리고 8황자와 14황자에 이르는 황자들의 왕위다툼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는 역동적이지 못하다. 약희의 로맨스와 엮다 보니 강희제의 의심과 견제, 황자들 간의 치열한 눈치싸움과 권력 투쟁의 과정은 그다지 치밀하지도 않거니와 강도도 약하다(설명으로 대충 넘어가는 부분도 많다). 긴장관계가 느껴질 때도 종종 있긴 하지만 심지어 형제들 사이도 그럭저럭 좋아 보이더라. 특히 초반 8황자와 일당들의 한가로운 일상을 보고 있자면, 호시탐탐 태자 자리를 노리는 황자들로 볼래야 볼 수가 없다.

 

약희와 8황자간의 닭살 돋는 로맨스가 정리되고 본격적으로 왕자의 난이 조짐을 보이는 15회 이후부터 슬슬 집중해서 시청하게 되는데, 약희와 4황제의 로맨스 부분 또한 대충 넘기고 나면 드디어 절호의 기회를 노리며 와신상담하던 4황제가 황위를 향해 정중동하는 흥미진진한 황위쟁탈전이 펼쳐지며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23,24부 이후다). 황위에 연연하지 않는 척 농사를 지으며 강희제의 마음을 안심시킨 4황자가 제사(천신제?) 지내러 다녀오라는 황제의 명을 즉각 따르지 않고 황제의 붕어를 기다렸다가 세상을 뜨자마자 황궁을 군사들로 포위하고 정권을 단숨에 장악하는 과정은 특히나 재미있다. 4황자는 즉위하고 나더니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카리스마를 본격적으로 내뿜으며 정적(황자)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울분을 참으며 바짝 엎드려 있었던 기간(약희가 빨래했던 대략 7년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8황자 일당에 대한 원한도 깊어, 약희와 의자매를 맺었던 옥단이 9황자의 밀정이었다는 이유로 팽형(가마솥에 넣고 삶아 죽이기)에 처할 만큼 잔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옹정제 4황자 윤진은 자신과 황권다툼을 벌였던 형제들과 신하들에게는 엄격했으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나라의 곳간을 살뜰히 채워 넣은 것은 물론, 후궁을 많이 들이지 않는 등 근면/절제하는 황제로 평가 받는다. 백성의 입장에선 훌륭한 지도자였을 듯하다.

 

약희는 다소 수동적이긴 하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주관만은 뚜렷한 여인이었다. 때문에 형부 8황자와의 불륜(?), 10황자, 14황자와의 경계성 우정도. 13황자와 이루는 소울메이트 관계도, 4황자(옹정제)와의 밀고 당기는 연애도 큰 거부감 없이 용납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후의 승자, 옹정제와 시간여행자 약희의 결말은 행복하다 할 수 없지만 그만큼의 여운을 남긴다.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제 이름은 장효에요.”라고 막판에 황제에게 고백하는 약희와 그녀가 눈을 감은 뒤 다른 세상에서 눈을 떴음을 어렴풋이 감지하는 황제. 두 사람의 인연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드라마의 결론 때문에 보보경심2가 가능한 듯싶다. 물론 현대로 시간을 옮겨 진행되는 보보경심은 변발의 압박보다 더한 촌스러움의 치명적 장애로 인해 극복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보보경심>은 중드에 대한 선입견을 날려주기에 썩 괜찮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어서 보기에 선뜻 손이 가는 다른 작품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루터(Luther) 드라마를 시청하며

니체가 말했다. 네가 심연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다. 끝없는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둠에 물들어 간다는 의미라고 짐작되는 니체의 이 유명한 말은 절대 악을 상대해야 하는 형사 루터(Luther)가 금과옥조로 삼아야 하는 금언이다.

 

존 루터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연쇄 살인마를 쫓는 런던 경시청 형사다. 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라고 명시되지는 않지만 살인마의 사고를 짐작하고 패턴을 읽어 다음 행동을 예상함으로써 범인을 잡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루터는 프로파일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프로파일러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으나 종종 이성을 잃고 흥분하며 가끔씩 몸이 앞서는 그는 냉정한 분석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에 따른 논리보다 감성에 의한 직감이 앞서는 그는 수사하면서 지켜야 하는 규정, 절차 같은 것도 자주 어긴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승부하는 형사이기에 성과는 좋은 편이다. 다만 문제를 자주 일으킬 뿐. 그러하니 상사의 입장에선 골치 아픈 요주의 인물일 수밖에 없다. 일이라도 못하면 확 자를 텐데 실력만큼은 출중하니 그러지 못하고, 데리고 있으려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형사에 대한 드라마/영화는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닌 게 아니라, 웬만한 형사라면 집안 문제든(특히 부인과의 불화) 개인적인 문제든(비리와의 결탁이나 음주, 도박) 한두 가지쯤 가져주는 게 필수다. 대롱대롱 매달린 살인마를 아주 살짝 발로 밀어버린 루터의 문제는 본인이야 근신처분 때문에 심각하겠다만, 그게 뭐 대수냐, 싶기도 하다. 인간 같지 않은 살인마에게 손 내밀어 다정하게 끌어올려줄 다혈질 형사가 어디 있겠냐 말이다.

  

루터가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다른 영화/드라마와 차별화된다면, 그건, 루터가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즉 살인마의 마음을 응시하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루터를 들여다 보는, “심연”이 있음에 주목했다는 점 때문이다. 루터의 생각을 읽고, 마음을 느끼는 심연, 앨리스 모건은 <루터, Luther>라는 드라마를 유사한 수사물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다.

 

물리학을 전공한 천재 앨리스는 우주만큼 차갑고 블랙홀만큼이나 어둡다. 부모와 개를 죽인 뒤, 의심 살 만한 일체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범죄는 그녀에게 하나도 어렵지 않다. 다만 누구든 자신의 치밀함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욕을 참을 수 없었을 뿐. 그런데 오직 루터만이 그녀를 발견한다. 앨리스를 들여다 보며, 그녀가 가진 심연의 끝 모를 고독과 슬픔을 이해한다. 타인에게 지극히 무관심했을 앨리스는 어둠을 직시하고, 그 근원적인 공포에 다가가려는 루터에게 끌린다.          

 

살인자와 교감하는 형사와 자신을 쫓는 형사에게서 비로소 사랑의 실존을 확인하는 냉혹한 살인자라는 흥미로운 관계는 시즌1의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며 끊어질 듯 아슬하게 이어지다가 엔딩에 이르러 폭발한다.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온 몸으로 체험한 루터는 분노에 삼켜 먹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이 때 그런 루터를 대신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대 어둠이 나선다. 심판자 앨리스다. 그리고 루터와 심연은 하나가 된다.

 

앨리스가 중심 스토리에서 자연스럽게 빠지는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다소 김이 새지만, <루터, Luther>는 주인공 루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다층적 심리를 잘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매 에피소드마다 인상적인 살인마를 등장시킴으로써 긴장감 또한 놓치지 않는 수작이다. 올 해 방영 예정인 시즌3로 마무리된다고 하니, 임팩트 있는 엔딩을 기대해 본다.    

 

+ 시즌3에 앨리스가 다시 등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즌2의 제니는 부디 곱게 사라져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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