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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2012) 영화를 보고

영화 <부러진 화살>은 처음부터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른바 석궁테러 재판은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서 행해진 명백한 사법범죄라는 것이 영화의 주장이다. 감독을 비롯하여 사건에 관계된 당사자들은 이 영화가 사실에 기반을 하고 있으며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만들려 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영화가 어느 쪽을 대변하는지 정해진 만큼, 이 영화에서 균형감각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영화는 영화로서 보아야 한다. 그것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아니 설령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조작이란 무엇을 보여주고 안 보여줄 것인지부터 시작된다고 보았을 때(진중권씨의 말이다), 그것이 100% 사실인지, 아니면 90% 사실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어리석고, 그렇다고 분명한 입장을 가진 영화에 대고 편파적/일방적이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그리 분별 있어 보이지 않는다 

공개된 자료와 영화를 일일이 분석한 네티즌의 글을 읽어 보았는데, 일견 일리 있는 지적도 많다. 특히 석궁테러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의 인격은 영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변호사를 당황하게 만들면서까지 공판에서 막무가내 우기고, 관련 없는 법 조항을 들이대가며 사사건건 재판의 진행을 훼방 놓는 김교수는 영화 속 점잖은 김경호와 교수와 절대 같지 않다(꼬장꼬장한 성격만은 동일할 것이다). 그리고 석궁테러의 원인이 된 교수 재임용 문제와 관련해서도 영화와 다른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의 오만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한 김명호 교수는 위선에 또 다른 위선으로써 대항하는 전형적 사기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법부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엄중한 심판을 하겠다는 식의 선언을 한 것은 이미 판결이 정해졌다는 암시와 다름없었다. 또한 누가 보든 이상한 증거물(부러진 화살의 행방과, 과학적으로 이상한 혈흔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석명하지 않은 검찰은 직무유기의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나라 법정은 진실을 규명하는 장소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법정은 최소한 공정한 재판 과정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사법 평등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석궁테러 재판이 합당치 못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진중권씨의 지적대로 석궁테러 재판은 사법부의 오만과 거짓을 비판하기 위한 사례로 적절치 않을지 모른다. 피의자 김교수에게 석연치 않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자면, 민주화 과정에서 정권의 시녀 노릇에 충실하여 수많은 양심수를 양산했던 죄를 묻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어설픈 정의감을 부추기기에 석궁테러 사건만큼 자극적인 사건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최근이기도 하고, 널리 알려지기도 했으며, 사법부 권위에 정확히 화살을 겨누었다는 상징적? 의미도 한 몫 했으리라. 화제성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이러한 영화에 이만한 소재가 없었을 거라는 말이다.

 

사실 영화가 한 쪽의 시각만 다룬다는 점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영화의 완성도다. 정의로운 기자와 노동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경계성 우정(?) 같은 건 그다지 와 닿지 않을뿐더러 재판에 집중하는 것을 도리어 방해했다. 사연이야 어쨌든 간에, 신세한탄으로만 들리는 박준 변호사의 음주 장면들도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다. 차라리 시종일관 변호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인 김교수와 사건을 승리로 이끌고자 팔방으로 노력하는 박변호사의 밀고 당기기가 중점적으로 보여지는 편이 영화적 재미를 위해 더 나았을 것이다. 또한 김교수 입장만을 대변하는 뚜렷한 지향성은 문제 없으나, 그러다 보니 영화가 상대적으로 지루해진 감이 있다. 김교수의 인간적 약점이라든가, 중간에 회칼 소지 여부가 쟁점이 되면서 변호사와 김교수의 신뢰에 문제가 생긴다든지 하는, “전환이 있었다면 영화의 내러티브가 더욱 풍성해졌을 듯하다. 촬영구도와 편집의 올드함 60대 노장 감독이 13 년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니 그러려니, 해야 할 것이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로서의 공정성이나 작품성, 그 밖의 여러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재판에서 가려지지 않았던 옳고 그름이 법정 밖에서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나라 사법부의 유명무실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러진 화살>은 일반적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법의 세계가 얼마나 우스운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성공적이다     
          

+ 영화를 보는 내내, 보도지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8년에 걸친 지리한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은 친정아버지와, 10여 년에 걸친 민사 소송에서, 증거를 인정하고도 그와는 상반된 판결을 내린 여러 판사들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 시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사법피해자 모임에 들어야 하려나 

 


해를 품은 달 (1~6회) 드라마를 시청하며

아바마마는 말한다. “나를 설득해 보거라. 그것이 정치다.” 세자 훤은 첫 눈에 반한 허연우가 세자빈으로 간택되도록 하기 위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영민하고 지혜로운 연우에게 공정한 간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처음으로 정치라는 것을 시도하게 된다. 고심 끝에 지혜를 짜낸 그는 성균관을 움직여 공론의 장을 엶으로써 대비마마의 입을 막고, 아버지 성조에게 친간(親揀)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교과서에서는 정치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다툼을 조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활동. 세자 훤은 세자빈 간택과 관련된 정치세력의 주도권 다툼에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왕과 대비마마를 필두로 한 윤씨 집안 사이의 갈등을 해결한다. 대의로 사람을 움직여 설득하고 양보하게 만든다. ‘정치를 한 것이다.

<해를 품은 달>은 왕을 태양으로 왕비를 달로 상징화하여, 두 태양과 두 달(왕이 될 재목(材木) 훤과 양명군, 왕비의 운명을 타고 난 연우와 보경)이 뜨는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퓨전 사극이다. 가상의 역사라 해도 바탕이 조선이고, 드라마의 주요 공간이 궁궐이니만큼 정치 <해품달>의 중요한 갈등 요소일 수밖에 없다. 조선의 정치 역사를 압축해서 말하면, 왕권과 신권 사이의 도전과 견제의 역전사(逆轉史)’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초부터 줄곧 지속된 왕권 강화정책은 신권을 억압함으로써 가능했고, 왕권에 맞서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신권은 끊임 없이 권력쟁취 방안을 모색한다. 권력을 잡는 방법 중 가장 용이(?)하고 확실한 것은 바로 왕의 외척이 되어 미래 권력을 선점하는 것이다. 세자는 왕이 될 때까지 자신의 어미와 세자빈의 가문으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하지만 잠재 왕권주자들이 왕위를 노리지 못하도록 세자를 비호해준 외척세력은 즉위와 동시에 왕권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버린다. 마음의 빚을 진 왕, 성조가 좀처럼 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듯 말이다.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끝난 시점에서, 훤은 자신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에 오른다. 왕과 백성의 소통 창구를 봉쇄하고 자기 곳간 채우기에만 급급한 외척과 신하들을 제압하고 충심으로 왕을 보필해줄 인재들을 중용해야 하는 훤. 하지만 그에겐 사람이 없다. 훤의 정치는 연못에 갇힌 은월각의 달처럼 앞뒤가 다 막혀 있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6회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드라마의 밑그림을 제법 성공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 특히 갈등구조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는 게 큰 장점이다. 세자빈 간택이라는, 미래권력을 가늠하는 사건에서, 외척을 견제하려는 왕과 대비의 대립관계는 양측이 벌이는 줄다리기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진다. 세자빈에 간택된 연우가 대비의 흉계로 죽고 대비의 위세를 업은 이조판서의 딸 윤보경이 세자빈이 됨으로써, 세자가 즉위한 뒤에도 왕과 대왕대비의 갈등양상은 그대로 연장된다. 내명부는 물론 대신들까지 한 손에 꽉 틀어쥔 채, 효심을 내세워 복종만을 강요하는 대왕대비는 현재 훤이 넘어서야 할 가장 높은 벽이다. 이에 더해 이복 형 양명군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여인에게로 향하는 두 사내의 연정이 왕권다툼의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선 물론 왕비 윤씨도 빠질 수 없다. 모든 것을 가질지언정 왕의 마음만큼은 얻을 수 없었던 이 딱한 여인은 가문의 무궁한 영달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악역 맡기를 주저치 않으리라.

 

정쟁에 희생되는 슬픈 로맨스는 <공주의 남자>에서도 이미 본 바 있다. 그런데 <공남>에서의 정치가 비극적 로맨스를 위한 극단적 배경 역할에 그쳤다면, <해품달>에서는 사랑의 향방이 바로 정치가 되고, 정치적 가치관 차이가 사랑에 영향을 끼치는, 사랑과 정치의 연립방정식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무릇 왕의 사랑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엄청난 권력이었으니, 훤이 추구하는 민심의 정치가 천심을 읽는 무녀 월과 어떤 식으로 얽히게 될지, 궁금하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아역의 호연을 성인 연기자들이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점과 실제로 6살 연상인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한 화면에 만났을 때 위화감이 들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애정씬 요구에 굴복해 진부한 사각관계(-재벌가 자제, 왕비=정혼녀, 대군=재벌 남주에 대적할 만한 능력자, 무녀=가진 것은 없으나 남자들이 홀딱 넘어가는 매력덩어리)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 또한 염려되는 부분이다. 갈등구조(왕과 외척)는 분명하나, 강도는 그리 파괴적이라 할 수 없는 점도 잠재적 위험요소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대왕대비를 위시한 악의 축이 얼마나 악랄하고 교활하게 활약하는가, 와 훤과 경쟁하게 될 양명의 포스에 달려 있다 하겠다.

 

사랑 또한 정치와 다르지 않다. 갈등을 조정하여 화해하고 감정이라는 공동의 문제에 일치와 합의를 보는 과정이 사랑이다. 누군가 우리네 사는 모든 것이 정치라 하였다. <닥치고 정치>라는 어느 베스트 셀러의 제목은 컨텐츠의 질적 가치를 떠나, 참으로 적절하다. <해품달>의 이야기에서도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바야흐로 2012년은 드라마도, 현실도 닥치고 정치’인 세상이다.     

 

+ 여진구는 어쩌면 연기를 그리 잘하나.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대사 칠 때 호흡이며, 시선처리며, 나무랄 데가 없다. 요즘은 어느 드라마를 보나 성인연기자들로 넘어갈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먼저다. 아역이 못해도 걱정, 잘하면 더 걱정이라더니한가인의 연기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련 우려가 계속될 것이다. 역시나 여신의 한계를 못 넘는다고 하면, 아역 출연분의 기억만을 고이고이 간직해야 할지도.

 

+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녀의 역할이 예상보다 커 보인다. 예전부터 한국의 무속신앙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해품달>에서 그런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신기생뎐>같은 천박한 무당 이야기 말고, 인간세상의 순리와 조화를 추구하는 고급스런(?) 무녀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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