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는 여러 리뷰에서 지적하듯 다양한 장르가 제멋대로 붙어 있는 영화였다. 스릴러와 공포 그리고 블랙 코메디와 치정멜로가 서로 얼기설기 얽혀 있다. 스토리는 일정한 템포로 파국을 향해 차곡차곡 밟아나가지만 장면, 장면은 서로 이질적이다. 영화는 곳곳에서 암전을 반복해가며 진행되는데, 한 번 암전될 때마다 마치 전혀 다른 영화가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 결국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불균질”하다는 것이다. 일관된 테마와 내러티브에 대한 욕심이 처음부터 없었던 듯도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집중도가 마치 지진계 그래프처럼 계속 등락을 반복했다.
<박쥐>는 크게 4막으로 나눌 수 있다. 1막. 불치의 전염병 백신 실험에 자원한 상현은 또 다른 불치병이랄 수 있는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 받고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다. 하지만 타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로 수포가 돋고 각혈하다가 죽는다. 햇볕에 몸이 닿으면 타버리는 등 뱀파이어의 체질을 갖게 된 상현은 절망하고 한순간에 빠져든 쾌락(친구 아내와의 정사)에 온전히 몸을 맡기기로 한다. 2막. 친구의 아내 태주는 도망간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우고 병약한데다, 머리가 모자란 아들과 결혼시킨 라여사의 한복집에서 도망치는 게 소원이다.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 달라는 그녀. 친구 강우가 태주에게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사실을 안 상현은 또 다른 죄악(살인)을 감행하기로 한다. 태주와 공모해 강우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 3막. 강우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라여사는 급기야 식물인간이 되고 상현과 태주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상현은 강우를 호수 속에 돌덩이로 눌러놓았는데, 돌에 눌린 채로, 태주와 상현의 침대 위로, 불쑥불쑥 등장한다. “이건 심리적인 거예요.” 라고 태주는 상현에게 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지만, 죽은 강우는 두 사람 사이를 점차 갈라놓는다. 그러다가 태주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조종했는지를 알게 된 상현은 라여사가 보는 앞에서 태주를 죽인다. 그리고 자신의 피로 태주를 다시 살려낸다. 4막. 뱀파이어로 부활한 태주는 거칠 것이 없는 악마로 변신한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피를 섭취하는 태주와 그녀를 말리려고 애쓰는 상현. 마작멤버 오아시스가 태주와 상현이 만든 이중적인 뱀파이어 월드를 방문하면서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피 튀는 살육이 벌어진다. 그리고 상현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괴물로, 인간이 꿈꾸고 욕망하지만 차마 가질 수 없는 특질로 이루어져 있다. 흡혈, 초인적인 힘과 변신 능력, 그리고 감염으로 번식하는 뱀파이어. 하지만 모든 인간의 소망이랄 수 있는 뱀파이어의 젊음과 영생은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살인)을 져버린 다음에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상현의 고민이 시작된다. 친구의 아내와 정을 통하면서 사제복을 벗어던지지만 인간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뱀파이어는 살인만큼은 어떻게든 피해보려 한다. 그 자신의 말처럼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 혹은 체질적 문제로 치부하려 노력하며 링거 튜브를 빨면서 연명한다. 때문에 상현이 강우를 살해할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강우가 죽여도 마땅할 인간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스스로 아직은, 인간으로 남고 싶은 뱀파이어는 살인의 당위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태주는 이를 이용한다.
한편 태주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다 . 더럽게 끔찍한 남편과 비인간적인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태주가 행복 한복점을 떨치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물리적인 속박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문제였다. 자신을 키워준 라여사와 모자란 남편에 대한 애증과 도덕적 책임감을 끊어줄 뭔가가 필요했던 것. 그토록 갈망하던 강우의 죽음 이후에도 죄의식에 시달리던 그녀는 한 번 죽고 뱀파이어로 부활하면서 비로소 인간임을 거부할 자유를 얻는다. 자신을 옭아매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듯 그녀는 온갖 인간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뱀파이어에게 살인은 더 이상 최고의 죄악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수렵일 따름이다.
닥치는 대로 살인을 하고 피를 빠는 태주에게 건물 옥상을 누비고 코뼈가 으스러지는 싸움을 해가며 상현은 경고한다. 인간이라면 그런 무차별적 살인은 그만 두라고. 하지만 태주는 그런 경고를 하는 상현을 오히려 비웃는다. 자살을 돕는다는 허울로 피를 구걸하는 상현은 죄의식을 가까스로 희석하면서 인간인 체 할 뿐이다. 먹이사슬의 꼭짓점을 차지하고 인간에게 윤리와 원죄의식을 강요한 신을 비웃는 뱀파이어 태주에게 먹히는 윤리의식은 동물의 세계 법칙이다. 인간 몸의 피를 일부만 빨다가 버리는 짓은 일종의 인간 경시가 아니냐는 상현의 지적에 들뛰는 짐승의 영혼을 가진 태주가 비로소 반응하는 것이다. 피와 물, 그리고 일부 고체로 이루어진, 먹잇감으로서의 인간의 몸에 대한 잔인하지만 숭고한 해부. 인간 영혼의 광기와 공포를 해부한다는 자연주의 문학의 숨결이 여기서 느껴진다.
그리스도 교인은 성수를 통한 세례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다음 세상에서 부활을 약속 받는다. 피로써 세례 하는 뱀파이어교는 다음 세상을 부정하고 현실이라는 지옥도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음을 보장한다. 인간과 짐승, 그리스도교와 뱀파이어교 사이에서 위태한 줄타기를 하던 상현은 흡혈귀가 되기 전, 최고의 죄악이라고 일컫던 자살(신이 내려주신 몸을 스스로 파괴하는 죄)을 선택한다. 백신 실험에 자원했던 것이 자기희생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자살이었다면 이건 죄악의 사슬을 끊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뱀파이어의 영생이나 사후의 천국이 아닌, 타오르는 태양에 의해 재가 되어버린 상현의 결말은 그가 신의 사제도, 욕망과 피에 갈급하던 짐승도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그저 주어진 삶을 어떤 식으로든 살아보려 했던 외로운 인간이었을 뿐이다. 이렇듯 인간의 본질이란 어쩌면 거룩한 순교와 자포자기적 자살의 모호한 경계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3막. 죽은 강우가 상현과 태주 사이에 슬며시 끼어드는 장면들이 좋았다. 강우가 태주의 입 안에 쪽가위를 집어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장면은 정말 소름이 끼치더라. 그리고 뭣보다 압권이었던 건 태주에게 피의 세례가 이루어지던 장면. 사이코 드라마로 시작해 고발과 배신 그리고 폭력, 뱀파이어 세례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라여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모든 것을 목도하는 부분까지 거의 완벽했다.
+ 마작멤버 오아시스가 강우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면은 예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 보나마나 살육이 이어질 거라는 예감해서였을까. 하지만 구도와 액션의 아이디어는 역시 좋다. 특히 서로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던 태주와 상현의 삼각 구도가 재미있더라.
+ 발에 대한 은유가 곳곳에 등장한다. 맨발로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태주. 가볍게 온몸을 번쩍 들어 올려 태주의 맨발에 신발을 신겨주는 상현. 태주의 거친 발에 입 맞추는 상현. 맨발의 태주를 안고 건물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는 상현. 뱀파이어가 되자 상처 난 발도 매끈해진 태주. 건물 사이를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태주. 죽음을 앞두고 상현의 신발을 꺼내 신는 태주. 재가 되어 발목이 끊어져 도로 땅으로 떨어지는 상현의 신발. 땅(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포괄적인(?) 은유라고 할 수 있을까?
+ 연기 평가? 신하균의 천연덕스러운 바보연기, 최고! 맹목적이고 비틀린 모성애 연기는 김해숙을 따라갈 자 없을 듯. 역시 굿~ 송강호와 김옥빈은 패스. 송영창 아저씨, 오랜만이어서 반가웠음. 여의도에서도 자주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