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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by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의 배경이 되는 미래 세계는 인공수정과 배양을 통해 필요한 인간을 대량생산 해내는, 철저히 계획된 사회이자 계급사회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개개인의 일생이 전부 계획대로 진행된다. 알파계급에서 입실론까지 세밀하게 나뉜 계급에 따라 생산된 태아는 잠재의식 교육을 통해 계급에 따른 생각과 행동 양식이 주입되고,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간다. 정신적인 번민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분노, 슬픔, 질시, 환멸, 고독, 사랑과 같은 극렬한 인간적 감정이 나타날 때는 소마라는 약(일종의 신경안정제이자 환각제?)을 복용하면 그만이다. 극도로 통제되고 어떠한 격변도 기대할 수 없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완전히 개방적인 성희와 촉각영화 같은 쾌락이 장려되는 사회는 분명 훌륭하다. 하지만 불행할 권리조차 없는 사회에서 사는 인간은 정말 행복한 것일까?


소설에는 이러한 완벽한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알파 플러스 계급으로 태어났으나 알파 계급에 준하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지 못해(대량생산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종의 불량품)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는 버나드다. 다른 알파 계급들과의 차이를 절감한 나머지 소외감과 고독을 느끼는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실존’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자각한다. 부모/자식 간의 유대감이나, 결혼을 통한 애착관계의 형성을 적극적으로 막고,  ‘만인을 위한 만인’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진정한 의미의 사랑(육체적 관계가 아닌 정신적인 교감)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 그는 레니나(알파계급의 아름다운 여성)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자신을 인식해주길 간절하게 바라는 그는 아무하고나 아무렇게 관계를 맺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깃덩어리’라는 말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그의 현실 인식은 거기까지다. 야만인을 발견한 뒤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을 끌게 되자 그를 괴롭히던 열등감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쌍둥이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똑같이 우월한 계급의 인간들 가운데 그는 보다 특별하고 싶었던 건데 그가 전부다. 타인과 다른, 조직체 속의 한 세포가 아닌 독립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강한 욕망이 그가 경험하는 실존의 시작이자, 끝이다. 소외를 느끼기는 하지만 획일화되어 개개인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의 문제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역시 알파 플러스 계급의 헬름홀츠다. 그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버나드와 달리, 너무 뛰어난 지적능력을 갖춘 나머지 주변 사람들과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부족할 것 없는 지위와 삶의 질을 영위하던 그는 자기 내부에 끄집어내주길 기다리는 능력이 있다는 걸 감지한다. 감정공학대학에서 일하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창작력만큼만 발휘해왔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치열하고도 강렬한 문장이나 표현으로 인간의 정신을 찌르고 꿰뚫는 것이다. 그의 막연한 바람은 사회가 내세우는 기치인 <격렬한 감정 지양>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강한 인상과 감동을 주는 것. 이는 육체적 만족과 정신적 평온함으로 유지되는 이 사회가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 능력이다.

하지만 헬름홀츠 또한 버나드와 마찬가지로 잠재의식 교육을 통해 형성된 사고를 뛰어넘지 못한다. 야만인 존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을 때 그는 그만 이야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는 광증과 광란과 같은 격한 감정에 관해 체제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나,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또한 알 수가 없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멋진 신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엄마”의 의미를 잘 아는 야만인, 존이다. 존은 엄밀히 말하면 체제 밖의 사람이다. 인공배양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 엄마 젖으로 자랐고,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고통과 희생을 통해 거룩한 영혼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지닌 신세계인들과는 사고와 행동이 전혀 다른 인간이다.

    

존은 신세계가 지향하는 바와 정반대 가치관을 가진 결정체다. 욕망을 억누름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한히 자유로운 성적 쾌락을 장려 받은 문명인들과 달리,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부터 윤리관을 습득한 존은 ‘순결성’에 천착한다. 환각성 도취제인 소마를 복용하게 함으로써 우울과 고독을 한 점도 남기지 않으려는 정부와 달리 존은 세계와의 단절과 고독한 고행을 원한다. 존은 획일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메스꺼움을 느끼고, 죽음이 초콜릿과 같은 것이라고 세뇌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한눈에 반한 레니나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레니나를 비롯한 문명인들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 린다의 죽음으로 그는 놀라운 신세계의 비정상적인 행복에 결별을 고한다. 모든 인간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총통에게 그는 신과 시와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며 신세계를 떠난다.


유토피아의 어원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이다. 어원처럼 현실 속에서 유토피아적 사회를 구현하기란 어려울뿐더러 이루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평화롭고 행복한 이상적 세계는 총통의 말대로 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제각기 다른 인간의 욕망을 기계적으로 통제하며, 누군가의 희생(희생당하는 것조차 모를지라도)이 없이는 이룩될 수 없다. 그런데 거의 모든 욕망이 충족되고, 계급에 대한 불만이 없는 사회에서 제각각 역할을 잘 수행하며, 아무도 불행하다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사회일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며 불만족의 상태가 곧 행복은 아닐 것이다. 또한 설령 그것이 진짜 유토피아라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 즉 자아실현의 욕구, 사랑하고 사랑 받고픈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나이 듦에 따라 보다 영속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성향, 본능적 고독 등등을 모두 제거 당하거나 억제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을 위한 유토피아일 수 없다. 인간의 형상을 한 자동인형을 위한 유토피아이거나, 최고 통치자 몇 명이 보기에 아름다운, 그런 세계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무한히 발전하고 신세계가 보다 더 정교하게 조성된다 한들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고난을 통해 높은 영혼의 기쁨을 갈구하는 인간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기계문명의 발전이 곧 인간성 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합리적 사고의 발달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그동안 인류는 많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존이 속해 있던 인디언 사회처럼 무지하고 야만적인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현대문명의 발달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작가는 이 풍자적 소설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 by 졸리 | 2009/10/13 16:45 | 책을 읽고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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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완소졸리 at 2009/11/01 22:42
오.... 흥미로운 책이네요.....

저는 캐나다에서 매우 게으르게(추위에 약한지라 활동성이 급둔화된지라...)
지내고 있습니다. 겨우 영어공부도 할 겸 해리포터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있네요.

이미 내용을 영화로 보아 얼추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멋진 신세계도 시간이 되면 함 도전해 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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