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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2012) by 졸리

 

<스포 다량 함유>

친절해졌다, 김감독. 설명이 많은데, 서사는 오히려 단순하다. 모호하고 난해한 표현이나 장면 대신 비교적 깔끔하게 다소 직설적으로 장면들이 이어진다. <빈집>, <시간>, <비몽>으로 익숙해진 나와 같은 관객에겐 갑자기 낯설어진 김기덕이다. <악어> 때의 시간으로 돌아갔다고들 하던데, <악어>를 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 그러한 분석이 맞는다면, 김감독은 회귀한 것일 게다. 내면의 응어리를 푼 씻김굿 <아리랑>을 거쳐, 실험적인 <아멘>을 지나.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가듯, 대중의 외면과 평단의 엇갈린 평가에도 꿋꿋이 갈고 닦았던 추상적 영화 언어의 강물을 감독은 스스로 거슬러 올랐다.

 

영화의 내용 또한 원초적 원죄를 지닌 야만의 짐승이 어머니라고 자처하는 여자를 만나 자궁과 같은 무덤 속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다. 살아 있는 동물을 제 손으로 잡아서 섭취하는 이 짐승은 사채업자의 손과 발이다. 채무자를 장애인으로 만들고 보험금을 타게 해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짐승에게 감정이란 없다. 성적인 욕구도 제 손으로 꿈 속에서 해결한다. 그런 그에게 빨간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널 버려 미안하다며 찾아온다. 어머니임을 확인하기 위해 짐승은 자기 살을 베어 먹인다.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다. 잔인한 통과의례. 어머니로서 받아들여진 여자에겐 당연히 비밀이 있다.

 

여자의 비밀을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처음부터 알아챘으리라. 여자의 숨겨진 목적과 임무의 완수 과정, 즉 영화의 후반부보다는 강도가 여자를 어머니로서 받아들이는 초반의 과정이 가장 흥미로웠다.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으며 내가 여기서 나왔다고?” 라고 묻는 강도의 마음엔 의혹과 분노와 복수심보다 더 큰 간절함이 있었다. 인간이 되고픈 짐승의 얼굴. 강제적으로 여자의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강도의 남성은 파괴적인 짐승의 본성이자 출생의 본질을 상징한다. 이 처절한 관계 맺음이 없었다면 강도와 여자는 계속 타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반면 결말로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채무자들의 현재 모습과 강도의 깨달음은 조금 작위적이다. 어머니를 통해 감정이란 것이 생겨버린 짐승이 변화를 보여줘야 했겠지만 다소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와 판에 박힌 듯한 대사 때문에 감동이 반감된다. 특히 강도가 뿌려준 4만원을 깨알같이 챙기는 비닐하우스의 부부 장면 같은 것들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상투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가슴에 칼을 품고 어머니로 잠입했으나 어느새 측은지심이 생겨버린 여자의 갈등을 좀 더 파고드는 쪽이 좋았을 듯하다. 죽음을 앞두고 먼저 간 아들에게 저 놈도 불쌍해라고 날름 고백해 버리다니. 은유와 상징으로 숨겨진 인간의 본심/본성을 표현하던 김감독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하기사 이 영화의 허무하기만 한 자기 고백적 대사들 전부 다, 문제라면 문제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며 두 손을 내밀며 신파조의 대사를 읊던 철없는 아버지부터, 뜬금없이 돈이 뭔가?” 라고 묻고 떨어진 아저씨, 그리고 나란히 앉은 엄마에게 돈이란 뭐죠?” 라고 묻는 강도와 엄마의 장황한 대답, 악마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죽음으로써 악마의 가슴을 찢어놓을 거라는 참으로 직접적인 발설 등. 건질만한 대사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대사가 대부분이었다.

 

자칫 신파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이 영화에 서늘한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였다던 조민수의 연기력이다. 미지의 여인에서 따뜻한 어머니로, 강도의 자위를 도와주고 치를 떨고 가슴팍으로 징그럽게 밀고 들어오는 강도를 야멸차게 밀어내나가도 강도와 데이트를 즐기는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조민수는 다채로운 표정으로 줄곧 관객들의 집중을 이끌어 낸다. 단조로운 억양과 시종일관 뻣뻣해 보이는 이정진은 종종 보는 이들을 오그라들게 하지만, 덩치만 클 뿐 서툴고 거친 유아기적 남자에 그럭저럭 어울린다.

 

결론. 무덤 속에 누운 세 모자. 엄마를 가운데 두고 죽게 한 아들과 죽은 아들이 누워 있다. 마치 두 아들이 하나의 자궁 안에 들어간 듯한 모양이다. 그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시신()을 먹고 자랄 나무다. 인간의 감정을 체득한 짐승의 최후는 도로 위에 선연하게 그려지는 붉은 선으로 남는다. 속죄라면 속죄이고 구원이라면 구원이다. 자신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얻어지는 구원. 그러나 풀려난 토끼는 오직 지나가는 자동차에 속절없이 치일 뿐이다. 트럭 아래 사슬로 자신을 매단 강도가 참회와 희생으로 자신과 타인의 용서와 구원을 이끌어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 무엇보다 불편했던 건 강도의 아이라인.

+ 강을 거슬러 간 김감독은 과연 바라던 알을 낳을 수 있을까?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 말고. 염원하던 한국 관객들과의 소통이라는 알.
+ 새로 문을 연 여의도 CGV에서 어머님과 함께 감상. 끝나고 뒤를 돌아 보니 어르신분들도 많이 보였는데, 다들 뭐 씹은 표정이었음. 입에 들어온 이 생 살을 뱉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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